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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예사

한국의 공예역사에 관해 알려드립니다.


고려문화를 단적으로 상징하는 것은
도자기 공예라 할 수 있다.

고려 도자기는 색채와 기법이 다양하며 유약의 색에 따라 순청자, 상감청자, 화청자, 진사청자, 철채청자, 천묵유, 백자 등으로 나눌 수 있으며 그 중에서도 상감청자가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의 형태는 병, 항아리, 주전자, 배, 완, 탁잔, 대접, 향로, 연적, 화장갑, 벼루, 서판도침,도인, 유병, 유호, 타구 등과 동자, 사자, 거북, 용, 기린, 원앙, 어류 등의 동물이나 표주박, 석류, 죽순, 연화형과 같은 식물의 모양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이들은 이와 같이 형태가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모두 선의 미를 강조하였음은 특기 할 만하다.

이 선의 미를 너무 강조함으로써 때로는 그 기능까지 희생할 정도였다.
한편 기법상으로 볼 때 도자기 표면은 음각으로 새기고 그곳에 백토나 자토 등을 다시 채워넣고 유약을 발라 구워내는 상감기법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새기는 방법은 양각, 음각, 선각, 투각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들 도자기의 문양은 보면 동자, 선인, 원숭이, 원앙, 소, 말, 쌍어, 봉황, 학, 기러기, 오리, 해오라비, 공작, 거북, 사자, 개, 귀면, 운학 등의 동물 문양과 도화, 매국, 하련, 모란, 포도, 송죽, 인동, 보상화, 석류, 버드나무 등의 식물 문양이 주였다.
이 밖에도 자연을 취재한 것으로 수파, 우설, 운무, 기암, 괴석 등이 있고 잡종취제로서는 칠보만자, 앗자, 시문, 간지, 기타 기하학적 도형을 들 수 있다.

다음에 고려도자기를 대표하는 시유도자기를 설명 한다.

가. 청 자
청자는 철분이 극소량 들은 태토 위에 1~3% 정도의 철분이 섞인 장석유를 바르고 구운 것이며 이 철분이 환원염에 의해서 제1산화철이 되어 청자색으로 되는 것인데 산화염(=산화불꽃)에 의해서 황색조의 제2산화철로 된 것도 편의상 청자라고 부르고 있다.
고려청자의 변천은 보통 3기로 나뉜다. 제1기는 1050~1150년까지의 초기 청자시대로서 순청자시대이며, 제2기는 1150~1250년까지의 최성기로서 상감청자시대, 제3기는 1250~1350년까지의 쇠퇴기로 구분된다.

제1기에는 순수한 청자색을 가진 무문, 양각, 음각 또는 각양 문형청자가 제작되었던 시기이다. 이 때의 청자색이 소위 비색 또는 취색이라 불리우는 것임 중국인이 말하는 천하제일물 중에 낄 수 있는 것이다. 이 제1기의 청자기는 유약이 두껍게 또 고르게 발라져 발 색이 깊고 순수하며 심연과 같은 유조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색이 다를 뿐 아니라 여러 그릇이 모두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은 소성온도, 유약의 배합 등 세부기술 면에서 아직 확고한 표준이나 조절이 없는 데서 생긴 현상일 것이다.

이 제1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서 대표적인 것은 인종 장릉(1146년)에서 나온 개합, 고형병, 방형태, 사자형, 향로(국립박물관 소장), 어룡형 주전자(국립박물관 소장), 압형 연적(=간송미술관 소장) 등을 들 수 있으며 특히 보상화문매병은 이 시기의 각선화문의 좋은 예이다.

제2기는 상감청자로서의 특징 때문에 잘 알려지고 있는 시기이다. 이의 시작은 12세기 중엽 부터인데 이 시기의 것으로 확실한 것은 명종 지능(1197)에서 나온 석류문완, 국화문혈과 서기 1159년에 죽은 문씨묘에서 나온 국화문혈, 보상화문완 등이 있다.
상감청자의 발생은 대채로 의종대(毅宗代:1147∼1170)라고 보고 있다.
상감기법은 현존하는 입사동향로가 1177년 이후 것인 점으로 보아 금속입사기법을 고려의 도공들이 도자기에 응용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나전칠기 같은 것에서 힌트를 얻어 도자기에 응용하였으리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제2기의 대표적 것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인 목단문매병 같은 회화적인 성격이 뚜렷한 것이 있다. 이 시기에는 또한 청자 상감기법 외에 잡유기도 만들어졌다.

한편 제3기라고 보여 지는 1250년경부터 1세기반 동안은 그 초기에는 몽고의 침입으로 다음은 중국 자체의 도자기가 쇠퇴기에 접어들고 고려청자기도 점차 쇠퇴기로 접어들게 되었다.

제3기는 또한 기형에 있어서 매병이 줄어들고 조그만 접시류가 많아졌으며 대접은 깊어지고 그 문양이 산만한 구도로 되거나 필치가 조잡해지고 있다. 또 동일문양의 반복 사용으로 무의미한 도안으로 화하여 부지부식간에 조선초기의 분청사기로 이행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 또 철사(鐵砂)혹은 백토, 진사 등을 혼용하는 화문청자도 많이 만들어졌다.

국립박물관 소장의 철화양유문병은 청자로서의 색조는 좋지 않으나 기형과 문양의 조화 및 버드나무 가지의 멋 등은 3기 청자 중 최대의 걸작의 하나라고 하겠다. 조그만 공간 안에 버드나무 한 그루를 배치함으로써 만들어 낸 무한한 공간과 선의 세계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이와 같이 제1기, 2기, 3기를 통 털어서 청자의 종류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① 순청자
청자 중에서 상감이나 다른 재료에 의한 장식을 하지 않은 푸른색의 자기를 말한다. 대개 아무 문양이 없거나 문양이 있어도 양각이나 음각으로 표현하고 그릇 자체를 동식물의 모양대로 만들고 있다. 청자 중 제일 먼저 만들어진 것으로 고려 말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② 상감청자
나전칠기나 구리로 만든 제품의 은입사(銀入絲)에서 힌트를 얻어 행하여졌다고 생각되는 것으로서 그릇이 마르기 전에 문양을 선각하고 백토나 자토를 물에 개어 푼 것을 붓으로 선각한 문양 자리를 메꾼 후에 그 표면을 닦아내면 선각한 곳에만 문양이 나타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후 유약을 칠하여 구은 것이 상감청자이다.

③ 화청자
화청자는 유약을 바르기 전에 그릇 위에다 필요한 염료로 나타내고자 하는 문양을 그리고 그 위에 청자유약을 바른 것을 말한다. 주로 태도 위에 백토, 흑토 또는 철사, 진사로 문양을 그리고 그 위에 유약을 바른 것인데 송, 원나라의 영향을 받고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또, 때로는 태도 전면에 자토를 발라 배경을 흑인색으로 하고 그 위에 문양을 백토로 그린 다음 청자유를 씌운 소위 철채자기가 말기에 와서 생산되었다.

나. 백 자
고려의 백자는 중국 화남 경덕진요 산으로 청색이 도는 백자의 영향 아래 12세기경에 발생한 것으로 본다. 태도는 백색 고령토이고 기벽이 엷으며 고대 바닥에는 시유하지 않은 것인데 기형, 문양 등에서도 송, 원의 백자와 분간하기 힘든 작품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말기에 이르러서는 기벽이 두꺼워지고 유색이 송나라의 정요풍(定窯風)의 독특한 백색으로 변화해 가며 조선초기의 백자로 변화해가는 과정을 밟고 있다.

백자에는 음각, 양각뿐만 아니라 흑토상감, 진사상감 등으로 시문한 것이 있고 기형에도 수병, 완, 합자, 유호, 향로 등 각종이 있다. 국립박물관에 있는 백자 상감유도 목단문 매병은 기복부에 청자태토로 세로 긴 능화형을 상감 하였고, 다시 그 내부에 흑, 백, 진사의 상감을 한 희귀한 작품이다.

다. 천 목 (天目)
천목(天目)이라는 것은 철분이 포화상태에 있는 유(釉)를 발라 황갈색 기조의 발색을 하는 것이다.
유가 두터워질수록 흑색이 나타나게 되지만 원래는 흑색이 아닌 것이다. 이것은 말하자면 철유라고 하겠는데 일본에서는 옛날부터 천목(天目 : 덴모꾸)이라고 부르며 그 이름이 이제는 국제적으로 사용되게 되었다.

이 천목유는 암석의 철분이 물에 녹아 흐르다가 재침전한 소위 감청광을 그대로 쓰는 것이다. 천목에는 문양을 백토로 상감하거나 조각한 것이 있다. 특히 상감에서는 흑지에 백토가 효과적으로 나타나고 있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천목과는 다른 인상을 준다.


조선시대의 도자기는 임진왜란을 경계로
전기와 후기로 나뉜다.

전기는 분청자기시대,후기는 청화백자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대의 자기는 고려자기와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다.
조선자기는 실용성과 견실성을 제일로 내세워 불필요한 곡선이나 불필요 한 면을 최소한도로 줄이려는 태도가 보이며 기벽도 튼튼하고 고대도 안정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고려자기에서 보이는 장식적인 기교가 거의 없다고 하겠다.

또 모양에 있어서도 문양이 가지는 그 자체의 미가 문제가 아니라 그 문양이 배경이나 기형에 작용하여 만들어내는 간결 순수에의 효과를 노리고 있는 것이 조선 도자기 문양의 특색이다.
이것은 조선시대의 양반들이 고려시대의 귀족처럼 섬세한 미적 감정이나 미에 대한 욕구가 없었으며 또 일반 서민층의 천성적인 순수 미의식이 그들 의사대로 구형되었기 때문이었다.

전기에는 고려청자의 퇴화형식인 각종 분청자기가 성행하였으며 한편으로 원말(元末)부터 일어난 중국의 청화백자의 영향하에 조선적인 견실한 백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15세기 중엽경, 세조대에는 이미 청화백자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 자기의 주류는 백자기로 그것은 명(明)나라 요법에 영향도 있었으나 소담하고 검소한 조선인들의 생활 감정이 빚어낸 하나의 독자적인 세계였다. 조선 백자에는 순백, 유백, 회백, 난백, 청백 같은 발색의 미묘한 구별이 있는데 대체로 살결이 부드럽고 따뜻한 것이었다.

기술적으로 보면 조선자기보다 고려자기보다 더욱 발달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조선 자기는 조선적인 맛을 지니고 어느 시대에도 없었던 높은 정신적 미를 이룩하였으며 그 형태와 색채와 문양이 순박하고 어리석고 미숙한 것 같은 초탈의 미를 나타내고 있다.
얼른 보기에는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것 같고 속이 빈 것 같은 형태의 요약과 색채의 단순함 및 장식의 간략함은 그 지나치게 째어져 있지 않은 어리석음에서 마음에 흐뭇함을 느끼게 하고 그것에 관한 애착심을 더욱 더 깊게 하는 바가 있다.

이와같이 우리나라에 있어 고려, 이조를 통하여 도자기가 발달하게 된 요인은 첫째로 도자기 원료가 우리나라에 많이 생산된다는 점이다. 그 원료를 열거하면 고령토를 비롯 점토, 도석, 백토, 산성백토, 정장서, 조장석, 규사, 납석, 백납석, 다이어스퍼어, 토상흑연, 석회석, 코발트광, 티탄광, 명반석 등 그 수는 40여 종에 달한다. 특히 북한 생기령 지방에서는 목절 점토 및 와목 점토가 풍부히 생산되며 하동의 고령토, 안양의 장석 및 도석, 여주의 점토, 주안의 점토, 서산의 규석, 강진의 규사, 가사도의 백납석, 동래의 함붕소 납석, 밀양의 납석 등은 그 질이 세계적으로 우수하다.

둘째는 고려 및 조선의 역대 조정에서의 왕궁의 어용기, 관아 사용 기명, 묘사 능원용 제기 등을 조달하기 위하여 자기 만드는 것을 관장하는 사옹원이란 관청을 두어 국영사업으로 하고 재정상으로 또는 제반 시설을 통하여 적극적으로 이를 후원 육성한 사실도 우리나라 도자기 발달의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제조공장을 중앙은 일명 번조소라고 하기도 하였으나 그것을 분주원이라 칭하였고 경기도 광주로 옮기면서부터는 광주 분원이라 하였다. 지방은 일명 자기소라고 하기도 하였으나 분원이라 칭하였다.

중앙 분주원 같은 곳에는 감관이란 관리를 두어 그 밑에 약 500명이 조직도 정연하게 분업적으로 작업을 하였고, 채색용 자기 원료를 발견한 자에게는 상직 또는 상품을 주어 사기를 높이기도 하였다. 분원 중에는 광주 분원에서 구운 자기가 가장 잘 된 것으로 이름이 나있다.

가. 분청자기

분청자기는 분장회청자기가 줄어든 말이며 청자와 같이 회색 또는 회흑색 태토 위에 백토로 표면을 분장하고 그 위에 회청색의 유약이 사유된 자기를 말한다.
분청자기는 퇴락한 상감청자에서 출발하여 인화문, 상감문이 발달하고 이 후 박지문, 조화문, 철화문, 귀얄문, 분장문 등 백토분장의 변화로 여러 가지 다양한 모습이 되었다. 이러한
분청자기는 15세기 최기에 기형과 문양, 유약 등에서 이미 독자적인 특징을 나타내어 인화문, 박지문, 조화문계는 세종 및 세조대까지, 철화문, 귀얄문, 분장문계는 성종대까지는 거의 완성을 보았다.
분청자기는 표면의 여러 가지 분장법에서 오는 힘 있고 신선하고 활달하고 장분방한 장식의장이 그 특질의 하나로서, 그 문양의 표현 기법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① 분청자기 인화문

국화판문, 국화문, 숭염문, 등을 주문야응로 우점문, 당초문, 완자문, 연판문, 나비문, 학문, 연주문 등이 부수된 문양으로 나타난다. 문양은 당초문 이외에는 모두 인화시문(=도장을 찍는 수법)이며 여러 가지 문양을 도장으로 그릇에 찍어 움푹 들어간 곳에 백토를 메꾸어 넣음으로써 문양이 나타난다.
② 분청자기 상감문
고려 청자 상감과 같이 회색의 기면에 문양을 파내고 백토를 메꾸어 넣음으로써 문양을 나타
내었다. 상감에는 선상감과 면상감이 있으면 선조의 상감이 앞선 것이고 면조의 상감은 나중에 발달하였다. 문양으로는 버들, 갈대, 학, 초화, 모란, 연화, 물고기, 파도, 용, 복사문등을 주 문양으로 하고 여러 가지 형태로 변형된 당초, 파초, 연판문 등이 부수된다 버들, 모란, 초화문등은 양식화되고 도식화하면서 구성의 묘미를 보인 것도 있다.
③ 분청자기 박지문
회색의 태토로 된 기면에 귀얄로 백토를 바르고 문양을 그린 후 여백의 백토를 모두 다시 긁어내어 문양은 백토색이 되게 하고 여백은 회색의 태토색으로 나타낸 일종의 대조적 표현 수법이다. 이 때 백색과 회색의 대조를 더욱 선명히 하기 위하여 흑갈색의 철분을 여백의 회색 부분 위에 칠하는 경우도 있다. 문양은 모란, 모란당초, 연화, 연당초, 모란잎, 물고기 등을 주 문양으로 하고 연판, 국화판, 완자문등이 부수된다. 모란과 모란당초가 연화문과 같이 이 시기에 특히 박지문, 조화문에 많이 등장한다.
특히 모란 당초, 모란잎 등은 활달하게 문양으로 재구성 변형되어 공예의장이 경지를 벗어나 흡사 반 추상화된 경지를 나타냄으로써 조선인의 조형적인 역량을 과시하고 있다.
④ 분청자기 조화문
회색 태토로 된 그릇 표면에 귀얄로 백토를 바르고 문양의 윤곽과 내부선을 선조로 긁어내어 바탕색인 회색선으로 문양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박지문과 혼용하는 경우도 많다. 문양은 연화, 연당초, 모란, 모란당초, 모란잎, 당초, 인동(=모란잎의 변형)당초, 물고기 등이 있고, 간혹 특이하게 가옥, 개(犬)그림 등을 주문양으로하여 파초, 당초, 연판문 등이 부수된다. 조화문의 문양은 여러가지 사실 문양에서 변형되고 단순화되어 재구성된 문양이 한가지 또는 두 가지 이상이 동일 기면에 하나로 어울려서 흔연하고 통일된 조화를 이루고 있다.
⑤ 분청자기 철화문
철분과 잡물이 섞인 회흑색 또는 흑갈색 기면 위에 귀얄로 백토를 바르고 그 위에 흑색이나 흑갈색 철회구도 문양을 나타낸다. 이때 백토를 다른 경우와 같이 기면 전체에 바르는 것이 아니고 굽 밑과 그 언저리 또는 구연 등은 남겨 놓아서 백토와 태토와의 대조가 어느 곳에서도 선명하다.
이 철화문은 계룡산 가마에서 생산되었으며 지금까지 조사된 것 중 연대가 확실한 것은 성종 이후의 것인데 성종 이전부터 이러한 수법이 있었다하더라고 15세기 후반에야 세련 번창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문양은 당초, 연화, 연당초, 모란, 모란당초, 삼엽문, 물고기, 새, 버들 인동당초 등을 주 문양으로 하여 당초, 파초, 연판문 등이 부수된다.
이 문양은 사실적인 문양에서 약간 도식하한 것 또는 회화적으로 재구성된 것 등이많다.
⑥ 분청자기 귀얄문
회색, 회흑색의 그릇 표면에 귀얄로 백토분장을 하여 귀얄으 힘있고 빠른 운도악ㅁ의 자국과 그 사이상이의 백토와 태토의 대조로 문양과 같은 효과를 나타낸다.
⑦ 분청자기 분장문
회색 또는 암회색 기면을 백토물에 덤벙 담갔다가 빼서 그릇 전면이 백토로 분장하게 된다. 이 경우 굽 밑까지 씌우는 수도 있지만 대부분굽과 굽 위언저리에는 백토를 씌우지 않아 태토와 백토의 대조적인 효과가 있다. 이것은 대체로 전라도 지방에서 많이 생산되었다.
⑧ 분청자기 취철사문
회색의 그릇 표면에 상감으로 문양을 나타내고 전면에 철회구액을 뿜어서 흑갈색의 반장이 기면 전체에 점철하게 된다. 결국 상감문에 철분의 안료를 뿜어서 표면이 다양해진 것이며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분청자기 모란문 취철사병이 하나있다.
⑨ 분청토기
이것은 자기(=또는 사기)에 들어갈 수는 없는 것이나 같은 시대에 같은 기법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단지 태토만이 점토질이어서 마치 질그릇과 같다.
나. 백 자

백자는 조선말까지 계속되어 조선의 대표 자기라 할 수 있다.
백자는 본래 고려시대부터 있었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백자 가마도 각지에 퍼지고 질도약간 바뀌어 조선백자의 발생을 보게 된다. 조선 백자에는 그 표면 유약의 색을 순백, 유백색, 회색, 계란색, 청색 등으로 미묘하게 발색을 하였다. 이 밖에도 그 표면을 청화, 진사, 철사, 석간주, 석록 같은 채색을 하여 장식적인 맛을 내기도 하였으나 그 중에도 청자자기가 가장 많이 제작되었다.
백자는 순도 높은 백토로 그릇을 성형하며 그 위에 어떤 안료와 기법으로 문양을 나타내느냐에 따라 다음 몇가지로 구분된다.

① 백 자(순백자)

백자에 아무 문양이 없는 것을 총칭한다. 조선왕조 전기에는 순백자가 대부분이었으며 여기에 문양이 있는 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② 백화자
순도 높은 순백의 기면 위에 코발트제의 청색 안료로 그림을 그리고 순백자와 마찬가지로 순도 높은 양질의 장석계 유약을 그 위에 씌워 번조한 것을 말한다. 중국에서는 원나라 때부터 시작되어 명나라 때에는 매우 발전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세조때 비로소 처음 만들었다는 기록이 실록에있다. 세조 초기의 청화백자는 백자로서의 공간이 많이 남아 있고 문양은 극히 간결하게 그렸으며 장식성이 없는 매우 독특한 미가 보인다. 중기에는 항아리의 형태는 둥그렇고 병은 다각을 이루는 형태가 많아진다. 문양으로는 난초를 주로한 초화문이 간결 청초하게 기면의 가장 적절한 부위에 그려지고 점차 세필로 된 수산문, 용문과 여러 가지 도식화된 문양이 부수된다.
대표적 문양으로는 용, 십장생, 소상팔경 등이 있다. 후기에는 청화느 원료인 회청이 서양으로부터 수입되었으므로 청화백자의 생산이 대푹 늘게 되었다. 문양으로는 용을 비롯하여 봉황, 소나무, 학, 심산풍경 등이 많이 나오는데 어딘지 모르게 형식화되고 조잡하며 완전히 그릇 전체를 덮고 있다.
그리고 그릇 전체를 한 가지의 목단이나 밤나무 가지로 메꾸어 버리는 것은 이 때에 나타난 문양의 특색이라 하겠다. 다시 말해서 이 때의 청화기는 완전히 쇠퇴의 길을 걷게 되어 청화의 색도 나빠지고 문양도 조잡스러우면서 질이나 격에 있어서도 중기보다 더 한층 떨어지고 있다.
③ 백자상감
순백의 순도 높은 태도의 기면에 문양을 새기고 거기에 자토(?土)를 메꾸어 넣고 그 위에 백자 유약을 시유하며 번조하면 문양이 검은 색으로 나타난다. 이 백자상감은 고려의 상감기법을 이어 받은 것으로서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고려백자의 계통을 이은 백자에 흑상감 문양이 시문된 것이고 또 하나는 원, 명의 백자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백자에 흑상감으로 시문한 것이다.
④ 백자철화문(=석간주문백자)
백자에 철회구로 시문한 것을 말한다. 국보 제107호인 백자철사 포도문호는 이화여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높이 53.3cm이며 백자 항아리에 철사로서 포도의 그림을 그린 것이다. 조선시대 백자 항아리에 활달하며 원숙한 그림을 그려 넣은 것은 거의 모두가 도화서화원들이 그린 그림이었다. 이 항아리는 산화철이 주원료이며 철사의 갈색은 짙게하고 그 밖의 색은 엷게 회화적으로 나타내어 맑은 청백색의 유약과 함께 전체적으로 문양이라기보다 한 폭의 잘된 그림과 같은 세련된 느낌을 준다.
⑤ 백자진사문(白磁辰砂文)
순도 높은 백토로 성형된 기면에 산화동으로 시문하여 백자유를 시유번조하면 환원상태하에서 산화동이 환원되어 문양이 붉게 나타난다.
⑥ 기타 흑유, 철채, 철사유
흑유(黑釉)는 태토가 백자 태토이며 유약 안에 철분이 많이 함유되어 번조 후 표면이 색이 흑갈색 또는 암갈색으로 된다.
철재(鐵彩)는 일종의 백자로 태토는 역시 백자 태토이나 기면 전체에 철회구를 입히고 그 위에 백자 유약을 시유하였기 때문에 표면에 광택이 있으며 색은 암갈색과 철정색이다.
철사유(鐵砂釉)는 역시 백자 태토인데 유약은 철분이 주가 되어 장석 등의 유리질이 미량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광택이 은은하다.